새움터 상담일지 #1

새움터 상담일기

                                                                                                                                     사무국장 최진일

[충남서북부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는 2018년 4월 출범한 충남서북부지역의 노동자건강권 전문 지원센터입니다. 산업재해 상담부터 각종 노동현장의 건강권 관련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담일기’에서는 새움터가 마주한 다양한 상담들 중에서 시민 여러분도 함께 알아두면 좋을 만한 사건들을 선별해 공유하고 관련 정보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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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에서 산재신청을 제안받은 노동자

  지난 7월, 당진의 비정규직지원센터로부터 산재상담 의뢰가 들어왔다. 약속을 잡고 만난 60대 노동자 S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쇠약해보였고 기운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차분하게 본인의 상황을 설명했다. S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이미 2년이 다 되어가는 2016년 9월, 양식장에서 건물철거작업을 하던 도중 3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눈 주위에 복합골절과 팔의 신경에도 큰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사고 직후 S씨는 의식을 잃었고 인근병원에서의 1차 진료를 받은 직후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양식장 주인은 첫 번째 병원의 진료비만 부담한 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수술비와 치료비를 혼자서 감당한 S씨는 치료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퇴원했다. 후유증으로 사고 이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S씨는 현재는 폐지를 줍는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듣던 중 왜 2년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산재신청을 고민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주변의 권유였을까? 새움터의 홍보물이라도 보신 걸까?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전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전화가 왔어요. 2016년에 사고난게 아무래도 산업재해인 것 같으니 산재신청을 해보라구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건강보험공단은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로 조성된 (우리가 흔히 의료보험이라고 부르는) 국민건강보험을 관리하는데 산업재해보상보험(흔히 산재보험)의 경우는 사업주들이 낸 산재보험료를 근로복지공단에서 관리한다. 즉, 다치거나 병든 사람이 산업재해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지급되는 보험금의 출처와 관리기관이 나눠지는 것이다. 한편 건강보험은 2018년 결국 적자로 돌아설 정도로 재정이 취약한 상황이 계속되어온 반면 산재보험은 2008년 이후 흑자행진을 계속해 수조원의 기금을 쌓아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공단은 산재보험에서 책임져야 할 환자들이 산재보험이 아닌 일반 의료보험을 적용받은 사례를 악착같이 찾아내서 산재로 처리하도록 유도하거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한다. S씨의 경우도 이런 과정에서 2년 전 진료기록이 건강보험공단의 그물망에 걸린 것이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재정적 불균형과 보험료싸움은 그 자체로도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낳는 것은 물론이고 수혜자인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도 큰 혼란과 불편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기형적인 시스템의 바닥에는 산재요건과 산재심사라는 산재보험제도의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시스템은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지도 않으며, 부상이나 질병이 업무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여기에 산재를 은폐하고 산재신청을 가로막는 사업주들의 압력, 소송까지 불사하며 산재승인을 거부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태도까지 맞물려 산재를 인정받는 것은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아직도 높은 장벽이다. 누가 봐도 산업재해인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새움터를 찾는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S씨의 경우는 명백한 사고이기 때문에 산업재해임을 입증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사고조차 S씨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양식장에서 일한 사실을 증명하고, 사고목격자의 증언을 받는 등의 쉽지 않은 일처리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모두 입증했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남는데 산재보상보험법에는 산재보험 의무가입이 대상이 아닌 사업이 일부 있고, S씨가 사고를 당한 양식장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6월까지는 일부 건설업에도 예외조항이 있었지만 개정을 통해 7월부터는 모든 건설노동자가 산재보험에 의무가입하도록 되었다. 하지만, 아직 S씨와 같이 소규모 양식장에서 일하다 다친 경우는 해당사업장의 의무가입대상 여부가 쟁점이 되고, 현재 새움터는 이 과정을 진행중이다.
 
개정된 산재보험 적용대상
 
  산재보상제도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의 투쟁을 통해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동자가 아프면 산업재해’라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 새움터같은 센터의 도움이 없이도 아픈 노동자는 치료에만 집중하고 산재에 대한 입증과 행정적 처리는 국가가 책임지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굴러가는 세상은 언제쯤 가능할까?